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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비 혜인 이현구 선생은 철종 임술년 서기 1862년 8월 25일에 예안현의 동면 교동에서 태어났다. 퇴계선생 14대손으로 어려서부터 기품이 높고 천자가 슬기로워 학문을 좋아하셨다. 나라가 일본에게 빼앗기자 울분을 참을 길 없어 항일운동을 했으며 나라와 목숨을 함께하려고 비장한 각오로 패랭이를 쓰고 야복을 입고 죄인으로 자처하면서 방방곡곡을 전전하시다가 갑술년에 이 생고개 마을에 거소를 정하시었다. 1940년 일본은 마침내 우리 최후의 빗줄린 창씨개명을 강요하매 더 이상 울분을 참을길 없어 식음을 끊으신지 36일만에 운명하셨다. 이날이 경진년 8월 6일 향년 79세였다. 이 어찌 쓰러져가는 삼천만의 겨레에 철저한 경고가 아니겠는가? 선생이 가신지 어언 30년, 나라를 찾았고 생명을 찾았으며, 선생을 추년하는 마음 간절하여 깨끗한 정성으로 행현계를 모아 선생이 순절하신 생고개 마을에 비를 세워 그 내력을 새겨 무궁한 겨레의 귀감으로 길이 우러러 보고져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