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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서원인 소수서원의 전통을 이어받아 1906년 4월 7일 사립흥주소학교로 설립된 순흥초등학교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신교육의 요람이요 미녹 정신의 산실이었다. 특히 1944년 9월에서 1945년 4월에 걸쳐 순흥초등학교 학생들에의해 일어난 항일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일이었다. 일본 식민지 통치 말기에 일본인 교장은 어린 학생들을 교육보다 전쟁 물자를 모으기 위한 일에 내몰았으며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어린 꽃봉오리를 폭력으로 유린하였다. 이에 분개한 이석한 등 6학년 학생들은 '일본인 교장과 교사는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동맹 휴학으로 일본 식민지 통치에 맞섰다. 일본인 교사들은 온갖 협박과 회유를 하였지만, 이들은 가을 서리와 같은 의로운 기상으로 끝까지 굽히지 않았으며 한편 1945년 4월에는 4학년이던 김낙순이 일본인 교장에 맞서 일본제국주의 교육의 그릇됨을 낱낱이 비판하여 그들의 잘못을 참회토록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어린 초등학교의 몸으로 일제에 항거한 순흥초등학교의 항일운동이야말로 보기 드문 민족정진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도다. 아아, 어린 학생들의 의로움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이에 우리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선배님들의 이 일을 돌에 새겨 영원히 기념하노라. 글 문학박사 권석창(52회) 2006년 4월 7일 순흥초등학교장 순흥초등학교 총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