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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일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안동의 대표적인 반촌이지만, 그의 집안형편은 어려웠다. 고향에서 남명학교와 동화학교를 마치고 대구와 서울로 유학하였지만 학업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다.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1918년 전라남도 도청에 잠시 근무하였으나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곧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는 그의 민족의식의 성장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후 권오설은 고향으로 돌아와 학술강습소를 열어 교육,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풍산소작인회를 조직하고 농민대중을 선도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권오설은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을 이끄는 핵심인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