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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문(1872~1943) 독립운동자금모금, 옥고 자 춘달, 순흠의 아들 1915년 민단조합(이동하의 주동으로 조직)에 가빙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함 1916년 일경에 체포되어 3년 6월의 옥고를 치름 1992년 건국포장이 추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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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필(1872~1936) 항일단체유원으로 활동 자 예몽 1923년 교남교육회에 가입함. 1924년 본회 임원으로 선출되어 구국운동을 전개함 김병태(1875~1968)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 옥고 1919년부터 23년간 독립운동자금 모금목적 유고문을 작성, 여러 사람들이 활용케함, 1923년 일경에 체포되어 10월의 옥고를 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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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섭(1876~1958) 독립운동자금모금 주동적역활, 구류 자 경후, 호 근산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함 1919년 4월부터 독립운동자금에 주동적 역할로 본인및 류관식등 9명이 출연한 총액을 8월 아우 응섭(자금지참 상해로 망명)에게 전달함. 1919년 일경에 체포됨. 1920년 5월 평양지법에서 1년형에 집행유예로 구류8개월만에 풀려남. 이후에도 전재산을 출연하여 계속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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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섭(1878~1957) 조국과 민족에 생애를 바친 항일활동 자 경장, 호 동전 1907년 한성 법관양성소를 졸업하고 함경도 함흥재판소 검사에 임명됨 1911년 조선총독부에서 평양지법 검사에 임명하니 사임함 1918년 평양에서 개업한 변호사 사무소를 대구로 옮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선도, 8월 중형 이섭이 주동적으로 모금한 독립운동자금 전액을 받아 상해로 망명, 김규식에게 인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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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임시정부 법무차장이 됨 1922년 배르흐네우친스크 고려동산당 연합대회에 참석, 임시 집행위원이 됨 1922년 만주 서로군정서 법무사장에 선임됨 1924년 정의부 발족 주역으로 중앙심팜원장에 선임됨. 1927년 혁신의회를 조직 만주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함. 1928년 재만농민동맹 대표로 활약함 1931년 3월 만주 장춘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60일간의 고문취조를 받던중 병을 얻어 풀려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