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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헌 이공은 철종경술(1850) 10월 3일 용궁면 나산리제에서 출생 큰키와 밝은 얼굴로 풍체는 사람을 감동시켰고 말할 때 논리가 유창하면서 조리가 있었다. 공은 그릇이 크고 생각하는 바가 구차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과거 공부는 예능으로 족히 배울 것이 못됨을 알았고 개연히 당세를 경륜하는 뜻을 지녔다. 얼마 후 서산 김흥락 선생을 배알하여 먼저 자신을 닦은 후에 가정과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마침내 공은 부지런히 이치를 규명하는 공부에 힘썼다. 경사와 성리학을 궁구하는 것으로 그 기본을 세우고 나아가 예락과 이치를 통하여 그 규모를 넓혔다. 따라서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 더욱 주밀하고 확충하여 체를 간직하고 용에 달하는 실효가 있었다. 애석하게도 기회가 이르지 않아 포부를 펼 수 없었고 이어서 나라의 치욕을 당하자 아픈 마음으로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에 창의사상을 키워 동지들과 맹약하고 몰래 설욕을 꾀하려 일곱 번 거창을 찾았고 세 번이나 한강을 건넜다. 공은 군자금을 조달하는 군자부로서 운강 이강년과 의맹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