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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士 洗心軒 星州 二公 圭洪 洗心軒亭 및 事蹟碑(의사 세심헌 성주 이공 규홍 세심헌정 및 사적비) 세심헌 이공은 철정경술(1850) 10월 3일 용궁면 나산리제에서 출생. 공의 본관 성주이씨는 신라때 재상 휘 순유를 시조로 삼는다. 고려 정당문학 문열공 휘 조년은 현조이다. 공은 향년 68세에 돌아가니 무오년(1918) 10월 18일이다. 입암 뒷산 부임원에 장사후 세심헌정 전산 갈라산에 이장, 부인과 같은 무덤이다. 공은 서산 김흥ㅎ락선생을 배알하여 먼저 자신을 닦은 후에 가정과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으며 공은 부지런히 이치를 규명하는 공부에 힘썼다. 경사와 성리서를 궁구하는것으로 그 기본을 세우고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 더욱 주밀하였다. 나라가 치욕을 당하자 아픈 마음으로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에 창의사상을 키워 동지들과 맹약하고 몰래 설욕을 꾀하려 일곱 번 거창을 찾았고, 세번이나 한강을 건넜다. 공은 군자금을 조달하는 군자부로서 운강 이강년과 의맹하고 의연금 만금을 모아 의막에 보냈다. 편지를 중국에 보내 외국원조를 돕도록 했으니, 그의 고심과 열혈은 뜻을 준동시키고 천심을 감동시켰다.. 공의 타고난 자품이 뛰어났고 공부한 바가 매우 두터웠으며, 평생 도의로 서로 귀의한 곳은 석주선생이다. 공의 저술은 심성정도설, 인도심도설, 열대통론, 주레한전요략, 감국정요등이다. 공은 독립유공자 포상(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52년 10월 세심헌정이 건립되고 2005년 2월 사적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