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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조공 용구는 어계 선생 조려의 16세손이요 어회 장군 창의 14세손이다. 함안조씨이니 자는 주숙요 호는 지은이다. 아버지 가선대부 충훈부도사 창규와 어머니 정부인 남원양씨게서 철종 1861년 신유 정월 초팔일에 풍천군 지보면 지포 속칭 불성기에서 태어나셨다. 품부가 경오하시고 의표가 단아하셨다. 부모를 모시고 글읽기를 좋아하시더니 문득 시골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정부의 뜻을 펴보시겠다고 하고 동사 주사공과 조카 봉은공과 함께 서울에 가셨다. 철종 24년에 중추원의관에 제수되시어 국정에 참여하셨으나 을사늑약이 이루어지자 공은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구축하시고 향토 사람들의 육영에 힘쓰기더니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니 일제와 항쟁하실 것을 결의하시고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경상도의 의성 문경 풍천 영주 지역과 충북 제천 등지에서 크게 활동하셨는데 1907년 7월 초순부터 까치성에서 이강년의병장의 병력과 합류하고 사방에 격문을 내어 의병들을 모았다. 의병들이 공을 의관에 추대하여 1908년 6월 초부터 까치성전투를 지휘하시어 중,북부지방으로 진입하는 왜병을 저지 사살하고 생포한 전공이 혁혁하셨다. 그러나 중과부적의 세에 몰리어 의병들은 각지로 퇴각하게되었다. 그 후 공은 영남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조달하였다. 슬프다! 공이 조국의 광복을 못 보시고 1925년 2월 27일 서거하시니 향년이 64세이다. 배위 숙부인 순흥안씨는 치대의 따님이다. 1990년 8월 15일 광복절에 정부는 공의 의병항쟁의 위업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내외분은 국립묘지에 모셔졌다. 3남 4녀를 두었으니 만제 유제 세제요 사위는 현필동 김수영 최재운 김우권이다. 손자 필권씨가 나에게 와서 비문을 청하였다. 명왈 나라 위한 포부도 있었건만 을사늑약에 비분강개하셨도다.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왜적과 싸움이 몇 번이던고 까치성의 전공이 혁혁하였으니 그 충절이 청사에 빛나리로다. 2002년 4월 청명절 문학박사 진성 이동영 근찬, 족질 양제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