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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투쟁 장진우 서기 1866년 7월 24일 산택리 태생. 서기 1905년 장진성, 장세용, 장세명 등과 함께 문경의 신태식 장군 휘하에 편입,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3.1독립운동에도 참여 피포되어 4개월의 옥고를 치루었고 1922년 6월 상해 임시정부의 밀령으로 당시 300원의 군자금을 제공하는 한편 이용수, 신태식, 한양이 등 동지와 의용단을 조직 활동 중 다시 피포되어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루었음 장진성 서기 1873년 3월 17일 산택리 태생. 서기 1895년 1월 서상렬, 장진우, 한양이, 김철상 등과 결사보국을 맹세하고 예천회맹을 조직 활약하다가 이강년 장군의 의진과 합세 왜적을 무찌르다가 1897년 중국 장백, 무송 지방에서 항쟁 중인 정인석 군영에서 3년간 군사교육을 이수 후 의병 500여 동지와 함께 1910년까지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등지에서 수십회의 전투에서 수많은 왜적을 괴멸시키고 물자도 노획하는등 혁혁한 전공으로 이강년 도창의대장이 포장으로 추대하고 3척장금을 수여하였음 김철상 서기 1878년 11월 23일 산택리 태생. 서기 1896년 한양이, 장진성, 장진우 동지와 회합 결사보국을 맹세하고 이강년 장군의 의진에 참모관으로 편입 왜적의 밀정을 잡아 처형하는데 참여 하였고 가재를 팔아서 군수물품을 공급하고 500여 의병과 12개성상 왜적을 괴멸하였음 한양이 서기 1883년 1월 17일 송암리 태생. 이강년 장군의 의진참모인 부친 한태섭의 우국충정의 유지를 받들어 1912년 동지를 규합 이강년의 아들 이승재와 결사대를 조직 매국노의 처단을 시도 3년의 옥고를 치루었고 그후 의용단을 조직 활약 중 1922년 10월 2일 또다시 2년의 옥고를 겪고 출옥 후에는 독립사상을 고취 하는 등 평생을 조국 광복에 헌신을 하였음 이봉래 서기 1906년 3월 18일 단천 태생 금남리 거주. 서기 1922년 10월 홍범도, 차도선이 이끄는 독립군 휘하 이명근의 소대원으로 종군하여 독립군 자금 모금의 사명을 띄고 활약 중 일본군 헌병대의 밀정을 처형하고 독립투쟁을 감행하다가 회산진에서 피포되어 6년의 옥고를 치룬 바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