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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루 우리고장 용궁은 축산 원산 용주(竺山 園山 龍州)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온 일천년의 역사와 더불어 명현 명관 등 문무백관과 충 효 열녀가 이 고장을 빛내었다. 만파루는 서기 1856년 구읍인 향석이 대홍수로 수침(水沈)된 그 다음해 관아(官衙)와 함께 현 소재지로 옮겨와서는 향토수재들의 백일장으로 한량편사(閑良便射)의 시예소(試藝所)로 남녀노소의 소요처(逍遙處)로 특히 독립운동의 요람지(搖籃地)로서 면민과 애환을 함께한 유서 깊은 문화유산이었으나 노후하고 수침한 것을 이건(移建)한 탓으로 애석하게도 서기 1945년 8월 중순경 자연 붕괴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우리 고장의 상징적 자랑을 되찾아 이를 정신적 뿌리로 삼아 더 많은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에서 정성어린 면민과 독지가의 성금으로 만파루를 복원하고 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우다. 서기 1988년 6월 일 만파루 복원사업 추진위원회 착공일 서기 1987년 10월 12일(정묘년 경술월 갑오일) / 상량일 서기 1988년 4월 2일(무진년 을묘월 정축일) / 준공일 서기 1988년 6월 30일(무진년 무오월 병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