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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실 전통 마을 - 조선시대 전통 생활문화의 숨결이 살아있는 십승지의 땅! 금당실 전통마을 : 우리나라 이상향을 대표하는 십승지의 하나로 꼽힌 길지이자,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다는 이곳 금당실 전통마을! 병화와 질병, 기근이 없다는 삼재불입지지의 금당실마을은 조선시대 양반문화가 서려있는 수많은 고택과 미로처럼 이어진 흙돌담길이 정겨움과 멋스러움을 자아내며,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간직해 오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마을 중 한 곳이다. 조선시대,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많은 세력가들이 이 곳을 찾음으로써 한때 서울과 같이 번성하기도 했고,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하는 등 유교문화가 활발했던 곳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100여동의 크고 작은 고택과 돌담길, 유적들만이 남아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해 주고 있다. 조선시대 역학과 천문, 지리에 능통하고 예언가로 유명했던 격암 남사고는 병화를 피해 살만한 곳이라는 이른바 남격암십승지론에서 이곳 금당실을 전국 십승지 중 한 곳으로 꼽았고,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전국이 전장화되었던 임진왜란 때도 이곳은 온전했다 한다. '지형지세가 물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국이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가 이곳을 지나면서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같다'하여 '금당실', '금당곡', '금곡' 등으로 불리었다 하며, '많은 명문권세가들이 이곳에 거주하므로써 이곳을 찾는 벼슬아치들이 많아 유교와 양반문화가 번성해 흡사 서울과 같았고, 풍수적 관점에서 금당실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그 형국이 서울과 흡사하다'하여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는 말 등 지명 유래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도 전해온다. 금당실마을은 마을내 고인돌 무덤이 산재하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상으로는 600여년전 15세기초 무렵 감천문씨가 이곳에 처음 정착하였고 그후 함양박씨, 원주변씨가 입향하면서 번성하여 큰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하며 인근마을에 예천권씨, 안동권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유적으로는 함양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배향하는 추원재 및 사당, 원주변씨 입향조 변응녕을 기리는 사괴당고택, 조선숙종때 도승지 김빈의 유적지 반송재고택, 구한말 법무대신을 지낸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고택터, 남야 선생 사당, 서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위해 방풍림으로 조성되었다는 송림을 비롯해 인근 마을의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초간종택과 초간정, 안동권씨 입향조 야옹 권의를 추모하는 야옹정, 그리고 춘우재고택, 연곡고택, 미산고택 등 조선시대 문화가 서려있는 아름다운 전통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