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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金塘) 맛질 반(半)서울 이야기 금당은 상금곡리와 하금곡리, 맛질은 제곡리, 대제리, 하학리를 합친 마을로 금당과 맛질을 반서울이라 부른다. 전설 1) 명풍 남사고가 말하기를, "이 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음이 아쉽다'라고 하여 그 뒤부터 '금당 맛질 반서울'이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전설 2) 조선 말엽 금당실 99칸 집 주인 양주대감 이유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경상감사, 법부대신, 한성판윤 등의 벼슬을 역임한 세도가였다. 그는 맛질에 살고 있는 처사 권경하의 집에 자주 놀러가는데, 그 행렬이 한양의 왕가행차와 흡사하고, 또 맛질에 와서 자주 교유한다고 하여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전설 3) 18세기에 높은 벼슬에 올라서 국왕을 보필하고 국사를 보살핀 이 곳 출신이 많아 반조정이라는 뜻에서 불리어졌다고 한다. 전설 4) 조선 초기 이성계가 용문을 도읍으로 정하기 위하여 그의 신하 권중화에게 닭을 한 마리 주면서, "이 닭이 울기 전에 용문에 도착하면 도읍을 정하겠노라."라고 했는데, 닭이 이 고개를 넘어서면서 울었기 때문에 여기를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고 전하여 온다. 전설 5) '맛질'이란 작은 맛질에 우거한 권의가 맏아들이어서 맏길(맛질)이라고 했으며, 또 마을 근처의 산과 들에서 마가 많이 나서 '마를 캐는 길목'이라고 맛질이 되었다고 한다. '반서울'이란 권의의 아들 7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높이 되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