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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폈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과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이 제휴하여 결성한 혁명단체였다. 동회는 국내에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고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하여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행동지침은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이었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치하여 혁명기지로 삼는 한편 혁명계획은 군자금 조달·독립군 및 혁명군의 기지건설·의협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 계획과 친일부호 처단 등으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우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집을 모의장소로 제공하며 채기중(蔡基中)·정세여(鄭世汝)·윤창하(尹昌夏) 등과 함께 친일부호에게 보낼 군자금 모집의 경고문을 작성한 후 수십통을 인쇄하여 발송하였다. 그러던 중 1918년초 대한광복회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붙잡혀 7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0년 미국의원단의 내한을 계기로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상경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25년 5월 정진회(鄭鎭華)·정운홍(鄭雲洪)과 함께 매국적 이완용(李完用)을 처단코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