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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과 죽고서원에 배향되었다. 증손 휘 탁 자는 언수로 증 공조참의이다. 신례리(대죽리)로 래거하여 500년 세거에 입향조이다. 휘 희증을 낳으니 증 호조참판인데 장방으로 향년 33세로 애석하게 요절하였다. 형제를 낳으니 장에는 휘 순으로 사재감검정이다. 차에 휘 섭이 현달하여 임진왜란에 창의하여 대 전과를 올리고 중훈대부 자예원사평에 제수되었고 죽고서원에 배향되었다. 그 후 7세에 내려와서 휘 한의 자는 백고이고 호는 낙파이. 문학이 맑고 아름다워 추중을 받았다. 가상과 유고가 있다. 많은 문행과 행장이 있었다. 그 증손 휘 형동 자는 맹임이고 호는 낙헌이다. 신망과 도량이 넓어 향리에서 모두 추존하였다. 공에게는 고조가 된다. 증조의 휘는 석동이요. 자는 성원이고 문행이 잇다. 조의 휘는 대현이고 자는 사행이며 호는 죽하이다. 전원 유도헌의 문인이다. 형제를 낳으니 장방에 휘 종한이요. 차에 휘 광한이다. 종한의 자는 해여이며 호는 죽운이다. 성도가 온화하고 풍의가 준위하였다. 배위에 예안김씨로 진사 휘택의 여이고 조는 영효이며 증조는 영복이고 문절공 담의 후이다. 3형제를 낳으니 장에 휘 병식이요. 자는 춘가이며 호는 동주이이다. 차에 휘 창식이요. 자는 윤주이다. 공은 막내로 성장하여 상주 농잠재학중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사건에 가담 일경에 체포되어 구금중 부친 종한공의 주선으로 석방된 후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만주로 망명 활약 후 1928년경 국내로 잠입 박창호 한일청 등과 회합 예천 농민적색조합 무명결사대를 조직 농촌진흥회를 적화하기 위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적색분자를 잠입시켜 반란을 이르키고 자급자족의 기치하에 직업적 수평운동을 전개하던 중 결사대가 적발되어 1934년 3월경 약 350명이 검거되면서 핵심분자로 분류되어 조사를 받던 중 동년 8월 20일경 석방되었으나 극심한 고문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음 8월 25일 서거하니 진실로 애석하다. 구국일념으로 나라를 위하여 28세의 젊음을 땅에 묻었다. 2006년 노무현 정권시 유해를 대전현충원에 안치하였다. 배위는 밀양박씨로 태훈의 여고 송당공영의 후이다. 3남매를 낳으니 장에 형기이고(1928년)생 차에는 형대인데(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