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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 대표회원이 되어 항일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식 고취와 왜정만행을 성토하였고 서기 1932년에는 영주 봉화 지역의 적색 농민조합활동으로 왜경에 체포되어 수개월간 미결수로 혹독한 고문과 참형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고 이듬해 12월 22일에 2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셨다. 출옥한 이후에도 항일운동을 계속하니 예비검속 등 험한 길을 수 없이 걸었다. 선생같은 애국선열의 피어린 희생의 결과로 1945년 8월 15일 조국광복이 가능하였다. 다음해인 서기 1946년 3월 19일 40세를 일기로 아깝게도 타계하시다. 아! 이 비보가 전해지자 동지 지인 유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선생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만장이 숲을 이루어 슬픔을 애도하였다. 선생의 공적이 하늘도 무심치 않아 선생이 작고한지 62년이 지난 작금에 공적자료가 발견되어 2008년 3.1절 기념식 석상에서 대한민국정부는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선생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는 일이 곧 나라를 지키고 민족정기를 이어가는 것이므로 이 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하고자 한다. 서기 2009년 5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