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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국권을 찾으려고 절규하는 겨레의 곡성이 메이라치던 저 기미년 봄에 유향 상주땅에 목터지게 독립만세를 선창하는 열혈청년이 있었으니 곧 독립의사 성해식선생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자결의 사조가 팽배할때 이 조류를 타고 서울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얼어났으나 아직 조용하기만하던 상주향인의 가슴에 불을 붙인것이 선생이다. 선생은 상주장날을 택하여 상신으로 상립을 쓰고 문루에 높이 올라 운집한 군중을 앞에 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호응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반향은 방방곡곡에 파급했던것이다. 빛나도다 그 20의 젊은 기상 장하도다 그 신명을 바친 용기 거룩하도다 그 숭고한 우국의 애정이여 선생은 왜경에 잡혀 수년의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후에도 적의 감시가 날카로왔으나 쾌쾌불락 항일의 투지로 평생을 일관하였다. 선생은 뜻한바 있어 도일하여 수년간을 순유하며 선진문물을 문견하고 귀국해서는 야학을 개설하여 청소년들에게 글을 깨우치고 민족의식을 심어주었으며 종사에도 진력하여 칭송을 받았다. 효자를 정려하고 충절을 추숭하는것이 국급인데 광복후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성씨는 관향이 창녕이며 고려의 중윤이신 휘 인보를 시조로 전하여 휘 송국문하시중으로 천리부시의 감천지대효이시니 홍유석학과 ?영대절이 착락상망하는 시례고가이다. 전 12세하여 휘 람호가 청죽이며 율곡우계의 문생으로 유일로 공조좌랑 무주현감을 지낸 증공조판서인데 곧 선생의 11대조다. 조고의 휘는 석장이며 선생은 서기 1899년 5월 23일에 고 휘 기원과 비 기계유씨 비 평해황씨의 2남으로 상주 능암리에서 생하였으며 천품이 명민하고 효우공검 하며 기우가 강장하였다. 기미년에는 약관으로 가방에서 독립운동을 선도하고 평생을 구국일념으로 지내다가 아까울손 40세를 일기로 1939년 2월 7일에 갈망하던 광복을 목전에 두고 타계하시니 천추의 한이로구나. 묘는 숙도사자좌의 언덕이며 배진주유씨를 합폄하였다. 선생은 1남1녀를 두었으니 금유수환은 유업을 선계하여 군문에 들어 5.16혁명 주체로서 육군대령으로 퇴역하였으나 조세하였다. 유손백균은 서울대학교를 거쳐 의학박사가 된 준재로 백현 백언 백창 백우등 동기와 합심하여 긍구긍당 선생의 유적을 천양하고자 정부보훈당국과 지역관계기관의 지원하에 종회장 학환 질 ?환 양씨를 위시한 첨종의 협력을 얻어 국사령봉하에 조촐한 비를 세웠다. 만시의 감은 있으나 공전의 성사이며 이로써 일구의 경관이 더 밝아지고 길손도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