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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정양수: 1889년 용화에서 경주정씨 가문에 태어나 3.1독립만세를 선봉 지휘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되어 옥고 2년 후 극심한 감시를 피해 불고가사 전국 각지를 변명으로 배회 항일하다. 8.15해방후 상경하여 공복회원으로 종각 타종에 참석 6.25사변때 서울 명동2가 18에서 납북되다. 의사 손기찬 : 1880년 칠곡군 석적면 반계리에서 안동손씨 가문에서 태어나 한일합방때 항일투쟁을 하며 무기를 각처 의병에 공급하다 일본군에 체포되어 혹고 2년 여 복역하고 이 곳 용화로 은신 중 작고하였음을 해방 후 정부에서 건국공로를 포상하고 있음 의병장 김용준 : 1883년 전북 군산에서 광산김씨 가문에 태어나 한일합방에 반기를 들고 의병장으로 자차 많은 의병과 대포 5문을 몰고 한본군과 격전하며 황해도까지 항전하다 패퇴 이곳 용화에 은신하며 한봉수 의병장과 합세 아장으로서 종신투쟁하시다. 의병장 홍우선(洪雨善) : 1884년 남양홍씨 문중에 태어나 한일합방의 일본침략을 저지코자 횽화에서 의병을 규합하고 무기를 입수하여 각처의 일본관헌을 무수히 살해하며 한봉수 의병장과 합세하여 아장으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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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는 경북 상주(尙州) 사람이다. 1919년 4월 8일 경북 상주군(尙州郡) 화북면(化北面) 운흥리(雲興里)에서 김성희(金聖熙) 등과 같이 동민 100여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선도하다가 피체되어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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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찬은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그는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1913년에 풍기(豊基)에서 채기중(蔡基中)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활동 등을 하였다. 1915년에 광복단과 대구의 국권회복단(國權恢復團)이 연합하여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결성하자, 이에 가입·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군자금모집 활동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는 1916년 음력 6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의 지시로 자신의 집에 권총을 보관하고 있다가 11월 7일 약목(藥木) 시장에서 채기중·임봉주(林鳳柱)·유창순(庾昌淳)·강순필(姜順必) 등에게 교부하여 이들이 친일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한 거사를 도왔다. 이 사건으로 동지들과 함께 피체된 그는 1918년 10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방해죄로 예심판결을 받았으며, 1919년 9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화약류취체령 위반으로 태(笞) 90도(度)형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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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홍우선 선생의 이름 역시 보훈처 공훈록에서는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