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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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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용화동(龍華洞)은 조선(朝鮮)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 때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상주(尙州)에서는 처음으로 왜적을 섬멸(殲滅)한 전첩지(戰捷地)이다. 당시는 상주성을 실수(失守)하고 목사(牧使)는 험준한 곳으로 몸을 숨겼으며, 판관(判官) 권길(權吉)이 순국(殉國)하니 왜적이 상주성을 소굴로 노략질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년이나 계속된 10월에 경상감사 김성일(金誠一)이 유병별장(遊兵別將)인 장군을 상주 가판관(假判官)으로 임명하여 조령(鳥嶺) 이하의 요충(要衝)을 수복(收復)하게 하였다. 장군이 명령을 받고 밤낮을 달려오니 왜적이 꽉 차서 발을 붙이고 설 곳이 없어 갑장산(甲長山)의 영수암(永修菴)에서 도임(到任)하였다. 이 때 왜적이 목사가 이 곳에 피란 온 것을 알고 이들을 도륙(屠戮)하기 위해 용화동으로 쳐들어간다는 정보를 듣고 장군이 뒤쫓아 가 보니, 그 선봉(先鋒)이 이미 동리에 들어가 있어 목사를 비롯한 수 많은 백성이 참화(慘禍)를 당할 찰나(刹那)였다. 부자(父子)는 마주 보며 울고 부부(夫婦)는 서로 간 곳을 몰라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어도 살길이 없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군이 바로 공격하려다가 전투중에 백성이 상할까 염려되어 왜적이 잘 보이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