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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지사 공의 휘는 상석이요, 자는 중렬이며 성은 전이고 관은 옥천이다. 시조 휘 聶(섭)은 백제 온조왕을 보위한 십제 개국공신 권성군이며 27세손 휘 侑(유)는 고려 충순왕 시 봉익대부 밀직부사 판도판서 상호군 관성군에 봉하니 옥천 관조이다. 18세손 휘 시운과 배 김해김씨의 子 휘 相錫(상석) 공은 乻峙洞(늘치동)에서 출생하니 幼時(유시)부터 총명이 特異(특이)하고 기품이 준수하여 承襲庭訓(승습정훈)에 事两親至孝(사양친지효)하야 향리 모범이러니 한말에 倭仇(왜구)의 침입으로 국운이 衰盡(쇠진) 嘆(탄)타가 乻峙(늘치) 정상에 성황당을 설립하고 우국일념으로 천지신명께 조국 광복과 국민 번영을 조석으로 기원하니 전동민이 동조하야 歲歲年(세세년) 元旦(원단)을 洞告祀日(동고사일)로 정하고 소망 성취함을 공히 축원하다. 老頃(노경)에 樂山樂水(요산요수)러니 향년 71세로 병술년 5월 5일에 수을 다하니 乻峙洞(늘치동) 間山(간산) 麓西坐原(녹서좌원)이 公之藏也(공지장야)라. 初娶(초취) 전주이씨 墓左(묘좌) 청화산 동구 병좌이고 再娶(재취) 밀양박씨 묘 祔右(부우)하다. 자의 휘 영오이며 손의 휘 경식이고 증손은 충환 익환이며 현손은 승배 동배 장배이다. 공의 증손 충환이 訪余(방여)하여 碣銘(갈명)을 청하니 사양치 못하고 이 사실의 전말을 詳知(상지)하는지라. 후일 僉君子考證(첨군자고증)에 삼가 명하노니 구국일념으로 城隍堂設(성황당설) 하니 白頭大幹(백두대간)인 乻峙(늘치) 정상이라 至誠衝天(지성충천)하니 巨洞隆盛(거동융성)하고 子孫綿綿(자손면면)하니 公之遺德(공지유덕)이요. 致誠城隍(치성성황)은 萬年蒼菴(만년창암)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