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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경북 상주인으로 1889년 창능참봉에 제수되시었으나 1895년 향교를 폐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로 상경하여 상소 극간하였으나 뜻대로 되지않아 동지 수명과 중국으로 건너가 조정과 태학에 글을 보냈으나 역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토적할것을 상소하고 각지의 의사들과 회동한후 김운노, 송창헌, 임용헌 등과 속리산에서 거의하여 서울에서 해산된 시위병 수백명과 청주진위대 해산병을 모아 군세는 1000여명에 달했다. 보은, 상주, 청주, 호남지방과 거창에서 일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거창에서 창졸간에 일군을 만나 대패 1908년 보은에서 피체되어 옥고를 치루었고 1910년 석방되어 재기를 꾀했으나 1913년 다시 피체되어 대구 감옥에서 15년 형을 받고 옥고중 단식한지 28일 만에 피를 토하고 순사하시다. 1968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국민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