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page


212page

公은 奮然히 일어나 雲崗과 內通하여 同志의 義를 맺고 倭賊討滅에 積極加擔하여 義兵募集活動에 큰 功을 세웠다. 그로부터 李康秊兵營에서 討賊에 앞장서서 姑母山城에서 接戰하였으나 戰勢가 不利하여 山中으로 一時避身하였다. 其後倭賊들은 露日戰爭의 勝利로 더욱 傲慢해져 高宗乙巳에 賊魁伊藤博文이 賣國五逆과 合勢하여 高宗을 脅迫하여 五條約을 이루어 兵營을 解散하고 國權을 掠奪하니 全國民의 憤怒는 爆發衝天하였고 或은 節死하며 或은 渡海結社하여 逆臣暗殺과 國權回復에 活動하게 되었다. 이때 丹陽山中에서 隱密히 活躍하던 李康秊大將은 倭賊을 討伐할 計劃을 세워 分散된 義兵을 다시 糾合하니 公은 迅速히 雲崗을 도와 從事하여 嶺南嶺北嶺東嶺西等地에서 大小接戰數十餘에 血戰苦鬪하여 많은 倭賊을 殲滅하였다. 戊申六月四日雲崗이 敵彈에 負傷으로 倭軍에 生捕되니 義兵의 士氣는 떨어져 各自避身하니 公은 悲憤의 恨을 안은 채 單身으로 忠州新塘里에 隱居活動中그해 九月十九日雲崗의 處刑悲報를 듣고 悲慟함을 禁할 수 없어 復讐救國에 더욱 沒頭하여 雲崗의 아들 承宰兢宰와 連絡하여 機會를 엿보던 中承宰마져 毒殺當하니 公은 千秋의 恨을 품고 故鄕으로 돌아와 書堂의 訓長으로 僅僅히 延命하였다. 庚戌年八月에 韓日合邦이 되자 杜門不出하였으며 그 後高宗이 昇遐하니 食飮을 全廢하고 痛哭三日하였다. 感傷時事하여 救國一念으로 初志一貫하게 盡力하다가 光復前戊辰十月二十日에 世上을 떠나셨다. 光復後庚午年에 政府로부터 建國勳章愛族章을 追敍하니 曾孫道植이 公의 略史를 가지고 碑文을 請託하니 그 義理에 感動되어 老廢를 不顧하고 事行을 記錄한 다음 이어서 銘曰帝韓之末黑齒竊國入闕弑后餘禍不測士是元氣掩卷持戟義同討賊雲翁之幕逆倭脅帝乙巳成約轅門兵散楓環月黑誓死救國許多助力驅南馳北偵察連絡大運之傾星落京獄飮恨隱居箕潁之曲一念復讐至死不慝褒賞受勳建國愛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