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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자 군문의 일선에 있던 의사는 이에 반대하고 의분과 비통 속에 국권회복의 길을 모색하셨다. 1907년 정미7조약에 앞서 민족보위의 중추인 군대를 해산하게 되자 대장 박승환은 통분을 참지 못하여 자폭하니 각 영의 위졸이 뒤를 따랐다. 의사는 시위대 병영에서 일군과 교전하니 나라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선두에 나서서 싸웠으나 애잔한 국력과 중과부적으로 시위대 군인들과 함께 그해 정미(양) 8월 1일 장렬히 최후를 마치셨다. 향년 32세 짧은 생애였으나 충효의 화신으로 구국의 영령으로 이 땅에 사셨다. 그 뒤에 칙령으로 장충단에 선무랑 병절교위로 기명이 되고 천운이 도래하여 나라가 광복이 된 뒤 1980년 독립유공으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나 1991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의사의 항일 순국은 숭고한 애족 애국정신의 발로요 민족자주정신의 천명으로 길이 추앙되고 빛날 것이다. 이에 의사의 송백같은 충절을 이 빗돌에 새기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