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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로되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는 것이니 이것이 선비의 길이요 우리 겨레의 빛나는 전통이다. 여기 조국을 위해 정의의 피를 뿌린 이가 계시니 그가 바로 효령대군 18대손 운강 이강년선생으로 부친은 기태공, 모친은 의령남씨며 무오 1858년 12월 30일 문경군 가은면 도태리에서 태어났고 용력이 절륜했으며 유학과 병서 등 문무를 겸전했다.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선생은 고향 문경에서 의거의 깃발을 높이 들고서 가산을 흩어 의병 수백명을 모으니 38세이었다. 이듬해 봄 의암 유인석대장 아래서 유격장이 되어 수안보의 왜적을 치고 조령에서도 적을 무찌르더니 형세가 불리하여 의암의 진이 요동으로 건너가므로 선생도 군사를 풀고 잠시 요동으로 나갔다 돌아와 영호남 지사들과 의리를 토론하며 때를기다렸었다. 그뒤 을사조약으로 국운이 기울어지자 다시 일어나 김상태, 백남규 등과 함께 청풍, 단양에서 항전했었고 정미년에 군대가 해산되자 40여진이 제천에 모여 도창의대장에 추대되고 도체찰사의 밀칙도 내렸으며 탁월한 전술로 갈평, 죽령에서 큰 전과를 거두었다. 무신년 2월 민긍호 대장이 체포되자 강원도로 나가 백담사, 강릉, 양양 등 영동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안동, 내성 등지의 전투에서 용맹이 전국에 떨치더니 6월 4일 청풍, 작성전투에서 왼발 복사뼈를 상해 사로잡혀 서울의 옥중에서도 추상같이 적을 꾸짖고 의병항쟁 13년만인 무신 1908년 9월 19일 교수형으로 큰 별이 떨어지니 향년 51세이었고 해방후 우리 정부에서는 건국공로훈장 중장을 추서하고 박정희대통령 특별분부로 승전한 유적지를 정화하여 선생의 의혼을 위로하고 높으신 공로를 표창하였다. 열세 해 일편단심 나라 구하려 싸우셨고 마지막 조국의 제단에 피를 뿌리신 이여 그 정신 겨레의 가슴마다 깊이 새기오리다. 1979년 3.1독립선언 60돌에 노산 이은상 글 우송 이상복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