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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좌익장군 천보락 약사 의병 좌익장군 천보락은 공의 부친 천석귀와 모친 창녕성씨 사이의 6형제 중 4남으로 1852년 9월 15일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남달리 기골이 장대하고 호안의 위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을 풍기는 풍모였다. 일찍이 학문에 열중하여 사서삼경 및 병서를 통독하고 용력과 지덕을 두루 갖춘 수재의 선비였다. 고종황제 때 경릉참봉이 되고 지역활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국운이 쇠퇴하여 1894년 8월 2일 명성황후가 일인에 의해 시해되자 의혈로 멸왜 구국을 맹서하고 운강 이강년 의병 전국 도창의대장 휘하에서 좌익장군이 되어 경상도 북부와 충청도, 강원 등지에서 왜병을 섬멸하는데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런 중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의 의병들은 더욱 비분강개하여 총 궐기로 왜적에 항전하니 처처에서 전공을 세웠다. 공은 문경, 갈평, 조령전투에서 맹활약하였으며, 갈평전투에서 왜정 과전삼태랑을 사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10년 8월 29일 국치의 한일 합방이 체결되자 통한을 품고 가솔을 거느리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공은 빼앗긴 조국의 원한을 가슴에 안은 채 망명지 만주 땅에서 1942년 12월 9일 조국의 조국의 광복을 애타게 그리며, 향년 90으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광복 45주년을 기하여 1990년 8월 15일 공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1995년 6월 21일 중국 요령성으로부터 공의 유해를 봉환하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치하였다가 그해 6월 23일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1묘역에 안장하여 공의 애국충절을 기리게 되었다. 한편 공의 고향 문경 관음에서는 1991년 3월 30일 지역 유림회 대표 고 류성삼선생이 당시 추진위원장이 되어 여기에 공의 기적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본 기적비는 2003년 9월25일 국가 보훈처에서 현충시설(관리번호 : 31-1-45)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