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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菴 申泰植 義兵大將 生家址(도암 신태식 의병대장 생가지) 소재지 : 경북 문경시 가은읍 민지리 186번지 선생은 고종원년(1864년 11월 22일)에 이곳에서 명하공의 장남으로 태어나시기 초휘는 철회요, 재휘는 태식이시고, 자는 열경, 호는 도암, 본관은 평산으로 문희공(개)의 15세손이시다. 통정대부로 중추원 의관을 지내시다가 한일협약이 체결되자 낙향하시어 1907년 8월 의병을 일으키셨다. 운강(이강년) 의진과 합세하여 문경 갈평리에서 왜적을 섬멸한후 단양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도선봉 전세영, 강창근, 중군 유재칠, 참모 엄해윤, 영솔 조수안, 별포 김운선과 함께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평안도 일원에서 왜적을 토벌하셨다. 이런 의병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군은 1907년 9월 1일 선생의 본가를 불태우고 대대적인 작전을 펴, 1908년 7월 영평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체포되시고 이듬해 2월 교수형이 선고되었으나 감형으로 10년의 옥고를 치루셨으며, 구국일념은 더욱 굳어 1922년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하여 대한독립 의용단 경북단장으로 해외독립운동 단체를 돕다가 탄로나 또 1년간 옥살이를 하셨다. 의병대장과 의용단장의 활동경력으로 일제의 감시와 박해 속에 조국의 광복을 보시지 못하고 1932년 1월 15일 서거하시니 향년68세시다. 선생의 항일 의병공적에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 선생이 지은 창의가, 답산가는 경상북도 동산문화재로 지정되어 의병활동과 국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선생은 항일 의병 독립운동의 뛰어난 지도자로 그 정신을 계승해야할 역사적 인물이며, 문경시 뿐만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생가를 복원하고 후세에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시민의 뜻을 모아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