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page


10page

한말의 일제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을때 쓰러지는 나라를 바로세우려 애쓰시다가 나라가 일제에 강점당하자 해외로 망명하여 한 평생을 오직 조국광복을 위하여 싸우신 애국지사가 계셨으니 바로 우리 고장 출신의 천세헌 선생이시다. 선생의 휘는 세헌이요 자는 종백이며 관은 영양이니 선조 임진(1592년) 왜란때 명나라 동원군의 조병군양사겸총독장으로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각처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왜적을 몰아내어 화산군에 봉함을 받은 휘 만리 시 충장공의 14세손으로 고의 휘는 병우요 비는 영성 엄씨 사진의 녀니 서기 1881년(신사) 5월 15일에 산양면 부암리에서 출생하시었다. 나면서부터 천자가 뛰어나고 웅대한 기상이 넘쳤으며 어려서는 가정에서 한학을 배웠고 16세에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에 올라가 외국어와 신지식을 배워 관계로 나아가 외부주사로 일하다가 한말국정의 혼란을 틈탄 구미열강의 침투와 일제의 병탐야욕을 보고 막을 방법이 없기에 선생은 1903년 약관 23세에 미주로의 망명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