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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학교가 배출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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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식_1883~1950 / 물산장려운동을 이끈 민족운동가 평남 평양 출생, 숭실학교 5회 졸업 젊은 시절, 평양 종로 거리에서 상점을 운영했던 고당 조만식은 놀기 좋아하는 대가로 유명했다. 그러나 23세에 숭실학교에 입학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기독교에 입문하며 술을 끊었고, 예비과정을 포함한 5년 과정 을 3년 만에 마치며 민족의식이 깨어났다. 일본 유학 후에는 민족교육에 힘썼는데, 이승훈의 뒤를 이어 오산학교의 기틀을 다지며 많은 애국 청년들을 키워냈다. 또한 전국 유일 한국인 재정의 승인 상업학교를 창설해 민족 교육은 물론 청년들의 자립을 도왔다. 1920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 애용운동을 이끌었고, 비타협 무저항 불복종의 방법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해 조선의 간디로 불렸다. 관서 체육회 회장, 조선일보사 사상을 역임하며 민족의 기개를 펴는데도 앞장서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받았다. 해방 후 통일 민족국가를 염원하다 6.25 전쟁 중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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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_1885-1962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음악교사, 작곡가 평남 평양 출생, 숭실학교 2회 졸업 숭실학교 재학 시절 선교사들에게 음악을 배우며 음악의 기본기를 다졌다. 숭실중 3학년 때 1학년 음악수업을 지도할 정도 로 음악에 소질을 보였고, 기숙사에서 풍금을 너무 열심히 치다가 다른 학생들의 항의로 쫓겨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김인식은 1905년 평양에서 연합운동회가 열렸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곡인 <학도가>를 만들었다. 숭실학교 졸업 후에는 상동 청년 학원 중학부의 음악교사가 되어 한국사람 최초로 음악교사가 되었다. 김인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음악교육기관인 조양 구락부 에서 홍난파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10년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 사인〉의 선율에 가사를 만들어 붙여 〈애국가〉를 발표했는데, 이 노래는 신흥무관학교의 〈국가〉로도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