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page


189page

대각사 대각사는 1911년 용성 진종 대종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서울 종로구 봉익동 1번지에 자리한 전통사찰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 사상을 기본정신으로 한국 근대민족 불교의 산실인 대각회 근본도량이며 본부이다. 백용선사는 전라북도 장수 백남현거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상규며, 출가 후 법명을 용성이라 하였다. 어릴 적부터 선사는 불교에 마음이 끌려 승려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후 아버지를 졸라서 스님되기를 원했다. 아버지 백남현거사는 아들 상규를 1879년 해인사 극낙암 화월대사에게 보내어 낙발하였다. 해인사에서 스님이 된 후 강원에서 수학하고 전국 각 사암들을 찾아다니면서 정진하여 23세에 깨달은바가 있었고, 44세에 중국 불교계의 선지식들과도 불법의 진리를 논하기도 하였으며, 47세에는 귀원정종과 대각교 의식집 등 수많은 저술을 하고 화엄경, 금강경, 능엄경 등 많은 경전을 번역 간행하였고, 한국불교 최초의 역경 사업을 펼쳐 불교경전의 한글대중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역경불사와 아울러 서울 종로구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 수리 개조하여 대각사를 세우고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을 발원하여 불교계의 큰 등불이 되셨다. 용성조사는 1910년 지리산 칠불암 선원에서 안거하던 중 나라를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오셨다. 그 후 여러 경로를 통하여 나라를 구하려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만해 한용운 선사와 김구(법명 원종이다. 김구 선생은 마곡사에서 승려생활을 4년 하였다)선생 등을 만나 나라 구하는 구체적인 논의를 하였다고 하였다. 대각사는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는 곳으로 열혈청년들과 구국열사들의 비밀 통로 역할을 하였다. 구체적으로 한용운 선사를 통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국독립의 길을 닦으셨다. 이후 1919년 3월 1일 명월관에서 33인이 독립운동 선언을 하였고 탑골공원에서 만세를 필두로 전국 방방곡곡에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대각사는 용성대종사의 원력으로 잃어버린 조국을 찾고자 애쓰시었던 고난의 역사현장이며, 불교전법의 도량이었고, 조사님의 열반의 땅이다. 여러분들이 서있는 바로 이곳이 옛 선현들의 고뇌가 숨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불기 2556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