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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師徐一 白圃 喆兄(종사 서일 백포 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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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포 서일(1881∼1921)은 초창기 독립운동사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길지 않은 40년 삶도 불꽃 같았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탄하자 만주로 건너간 백포는 이듬해 의병단인 중광단을 조직해 단장을 지냈고, 간도에 명동중학교를 설립, 정신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을 병행했다. 1918년에는 만주벌 호랑이라고 불리던 김동삼,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등과 함께 독립선언을 발표했다. 1919년 중광단을 대한정의단으로 바꾸고 나서, 김좌진, 이범석을 맞아들여 대한군정서로 확대 개편해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 당시 백포는 연해주에 있던 체코군으로부터 직접 무기를 사 독립군을 무장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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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군정서의 다른 이름인 대한군정서의 지도부는 총재 서일, 부총재 현천묵, 총사령관 김좌진, 연성대장 이범석 등이었다. 백포 휘하의 김좌진은 대한독립군의 홍범도와 함께 1920년 10월, 청산리에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둔다. 이 전투 이후 일본의 반격이 극심해지자 흩어져 있던 10여 개의 독립군은 만주와 소련의 국경으로 이동해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백포를 총재로 추대했다. 김좌진과 홍범도가 부총재, 총사령관 김규식, 여단장 이청천 등의 진용이었다. 그러나 1921년 8월 26일, 소련 국경 지역인 밀산현 당벽진에서 토비의 습격을 받아 다수 독립군이 사망하는 ‘당벽진참안’(當壁鎭慘案)이 발생했다. 백포는 기울어가는 독립군의 운명과 자신을 따르던 젊은 동지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자책하다 8월 27일 아침, 산에 올라 자진했다. 백포의 죽음 뒤에는 그의 기개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백포는 자진했다고 전하지만 흔히 말하는 자살과는 전혀 다른 뜻이 있다. 백포가 심취했던 대종교에는 수련의 한 방법으로 호흡을 조절하는 조식(調息)이 있다. 조식의 최고 단계가 되면 완벽하게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데 백포는 스스로 호흡을 끊었다고 한다. 대종교 초대 교주 나철이 황해도 구월산에서 자진했다고 전해지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출처 : 매일신문 鄭知和/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