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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흩어진 의병들을 모아 3월 25일 김천 직지사에서 재기하였으나 이 또한 고종의 의병해산 조칙(詔勅)에 따라 해산하고 말았다. 그 뒤 고종의 부름을 받아 정부의 요직을 거치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허위는 의병을 일으키라는 고종의 기의(起義) 밀지를 받고 1907년 8월 다시 경기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해산군인을 포섭하고, 각지 의병부대와 연합하여 경기도 연천을 본거지로 진세를 강화하며 투쟁하였다. 또 전국 의병 연합부대인 13도창의대진소(道倡義大陣所)를 설치한 후, 지휘부서인 원수부(元帥府)를 구성하고 이인영을 총대장에, 자신은 군사장에 올라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또 그는 임진강 유역 연합부대를 일으키고 자신이 총대장을 맡아 서울진공작전을 다시 추진하였으나 경기도 영평군 한 농가에서 일본군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1908년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54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