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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산하 낙수상의 고산정은 야성송씨의 500년 세거지이고 백세각은 충숙공파 종택이며, 3.1독립운동 당시에 항일의거한 곳이다. 이 高山은 원래 孤山이었으나 충숙공 야계 송희규께서 명종조 을사사화때 오두는 가쇄고 오골은 가마나 오지는 불가탄이라 하며 불의에 항거하다가 유배되었던 땅 高山과 같게 고쳐서 의절을 드높인 동명이고 백세는 충효영전의 뜻을 담은 종택의 편호이다. 이렇게 유래된 고절 가풍을 승습하여 오던중에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공산 송준필이 백세각에서 문회를 열어 사생은 천명이다. 나라가 회복되면 죽더라도 사는 것이요 나라가 회복되지 못하면 살더라도 죽은 것이다하며 창의를 결의하고 이 말을 서두로 의거를 충격하는 통고국내문을 기초하였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 만방의 공의가 자재하여 나라를 흥복할 가망이 있는 터에 우리들은 오히려 문을 닫고 앉아서만 있을수 있겠는가. 원컨대 군에서 향으로 향에서 동으로 독립의 기를 세워 망복의 뜻을 밝히고 파리만국평화회의에 공고서를 보내어 우리의 관정과 소원을 알게하여 공의가 회장되도록 하자 하였다. 이 격문을 송인집이 글씨를 쓰고 봉?서당내 흥효당의 비목을 빼어다가 송종직이 글자를 새겨서 수천매를 인쇄하고 문중과 문도의 소장을 동원 각지에 배포하여 일제히 거의케 하였다. 한편 아들 수근을 시켜 유림의 원로인 회당 장석영에게 편지를 보내어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