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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희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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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애족의 충정으로 본 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향우 동지인 송회근 송우선 송수근 이봉희등과 더불어 자주 회합 열의끝에 모든 계획을 수립하여 군내에 거주하는 다수 동지들을 규합하여 태극기와 선전문을 만들어 군내 각면 동리에 배포하고 거사 준비가 완료되자 동년 4월 2일 성주읍 시일을 기해 시장에 운집한 수천 군민과 합류하여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시외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성주경찰서로 달려갔으나 당황한 일경들의 총탄발사로 사상자들을 내게 되자 많은 군중들은 해산되고 선생은 여러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 지방법원에서 일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혹고를 겪었다. 그리고 선생은 출옥후에도 일경의 감시에 굴하지 않고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고취하며 지하운동을 펴오던중 1945년 8월 15일 몽미간에 그리던 조국 광복의 날을 맞이하였으나 그 격분은 잠시뿐 해방된 조국의 강토는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국토분단이라는 또다른 비극을 초래하게 되어 선생은 일구월심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나날을 보내다가 애석하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59년 10월 15일 한맺힌 생을 마치니 향년 6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