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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정재기 선생 묘도비 이전기 이 비는 1857년 이곳 기촌(갓말)에서 태어나시고 1919년 돌아가신 독립유공자 정재기선생(자 성로, 호 성재)의 묘도비이다. 선생께서 문목공 한강 정구선생의 13대손이며 징사 지애공의 5대손으로 아버지 성함은이시고 어머니는 옥산 장씨이시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시고 타고나신 재주 또한 출중하셨으나 자신이 게으로고 우둔하여 성현들의 학문에 미치지 못함을 항시 경계하셨고, 사람은 물론 사물을 대함에 있어서도 한결같이 공명정대하셨으며 행동하심이 방정하셨음으로 수신과 수행을 함에 있어 자연스럽게 언행일치와 지행일치를 이루신 큰 선비이셨다. 무릇 선비가 독서를 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곧 도를 이루기 위함이라 하셨으니 독서 좌우명과 수신계율을 따로 적어 곁에 두시고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닦고 스스로 깨우치시며, 60여 평생을 솔선수범하여 의와 선을 행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선생은 또한 단순히 옛 성현들의 학문과 가르치심을 답습하고 따르는 안이한 생각에서 탈피하여 잘못된 구습을 과감히 혁파하여 선을 행하는데 정성을 다하시고 덕을 인근 사방에 골고루 베푸셨다 하여 주변과 원근의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개결한 군자라고 흠복했다고 한다. 이러한 선생의 이략이 있었기에 보모를 위한 효도와 나라를 향한 충의가 안과 밖으로 크게 어긋남없이 물 흐르듯 하나로 귀결될 수 있었던 것이니라. 1910년(경술년 국치의 해) 일제의 국권침탈 소식을 접하신 선생께선 국가를 책임진 사람이나 초야에 묻혀사는 이름없는 백성이나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는 졍중이 다를 수 없다고 개탄하시며 십년을 오직 나라를 잃은 울분과 나라를 되찾을 일념으로 세월을 보내시다가 영.호남선비 137명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