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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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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했고 학문에 깊이 통달했더라. 공은 1910년 한일합방조약이 발표됨에 호국독립의 일념으로 유림을 격려하여 항일운동에 심명을 걸고 활동하며 1913년 사재를 내어 양곡서숙을 개설하고 교육사업에 힘쓰며 한편으로 동지슈합의 회당으로 했고 1919년 3.1독립운동이 발발함에 동지 배상연 서병우등과 적극 참가해서 그해 4월 2일 성주 사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의 시위에 활약하고 만세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1심에서 징역1년 6월의 형을 받고 항고하여 6월의 형이 언도되니 대구형무소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고 출옥후에 전국의 독립우동가에 격문을 보내는 한편 독립군의 자금조달에 힘쓰다가 옥고의 깊은 여독으로 조국의 광복을 보지못한채 1922년 7월 29일 꽃다운 향년 34세로 한을 남기고 운명했으니 하늘이 무심타 않으리오. 1992년 3.1독립운동의 공적이 확이되어 대통령 표창을 받았더라. 묘소는 탕곡 마을앞 자좌원에 모셨도다. 부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