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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활동에 적극 헌신알 것을 맹세하고 그 즉시 광복단 경북특파원이라는 신임장을 안고 아울러 모집한 광복단원을 만주 땅으로 잠입시킬 ㄸ깨에는 의주에 사는 김옥명동지와 긴밀한 협의 끝에 압록강을 건너도록 하라는 지침을 받고 대정9년 12월 25일경에 국내로 들어왔다. 고국으로 돌아온 공은 그 이듬해 음4월에 대구 서상일을 찾아 광복단의 취지와 목적을 상세히 동단에 보낼 장정을 모집하는데 힘써 줄 것을 간곡히 말하고 동년 음8월에는 칠곡군 기천면 신동 예수교회당에서 이덕생 이수건등에게 단원가입을 권유하여 찬동을 얻은 결과 이 두 장정이 의사 김옥명의 안내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간도광복단에 가담할 수 있도록 적극노력하였다. 또 안동읍내 예수교회당에서도 광복단활동을 펼쳤으며 이듬해 대정11년 음10월 6일에는 상주읍내 예수교회당에서 김동필에게도 같은 취지와 목적을 말하고 모집을 극력 권유하는 등 각방으로 주소일념 애국활동에 온 힘을 하였으나 기대하던 성과를 크게 거두지는 못하고 같은 해 섣달 본적지인 성주군에서 체포되어 압송되는 도중에도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시며 백척불굴의 의로를 밝혓으나 무도한 일제는 귀를 막은 채 치안유를 방해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징역2년이라는 고초만을 안겨주었다. 아! 문신은 돈을 아끼지 않고 무장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가히 태평을 누릴 수 있다는 충신 악비의 말이 정녕코 것짓된 말일 수 없다. 나라를 잃은 백성이 고향을 등지고 이역만리 객지에로 떠돌아 다님ㄷ고 익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거니와 조국광복을 위해 힘쓰시다 영어의 몸이 되셨던 공의 행적도 오리혀 당연한 일이였다. 그러나 오늘 새삼스럽게 공의 충의를 추년하는 까닭은 간혹 입에 맞는 웅장만을 취할 줄 알지 의로운 길을 저버리거나 잊어버리는 자들에게는 크나 큰 경계가 되겠기에 이에 공에 대한 공적기록을 참작하여 그 대강을 적어 새삼 추념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