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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甪里書堂(녹리서당) 현판이 걸려있었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가 후학을 위해 고종 27년(1890)에 지은 강학지소라고 한다. 후손들은 대구로 이주했다고 한다. 회당 장석영 선생의 산소의 위치 확인이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