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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잠영상승한 기내 경주 대벌 여계 은둔 절신 둔촌 이선생의 혈맥을 이어받아 이 고장에 5백년을 뿌리내린 영남 명벌의 유복한 후예이시다. 금학 낙수의 영기 타고 한 많은 경술국치 직후인 서기 1912년 임자 5월 19일 심재 수목공과 회재 선생의 후예인 여강이씨와의 2남 2녀 중 장자로 매원동에서 출생하니 공의 휘는 두석으로 생이형이하여 이급성장에 기우가 헌앙하고 지기가 경개러라. 어려서 왜관보통학교에 들어가 일인의 차별 박해를 피부로 느낀 바 졸업 후에도 뜻을 세워 서울 중동중학에 입학하니 삼천리 이 강토는 구국의 열화로 뒤덮여 청년학도의 폐부에 파급되니 때마침 1919년 11월 3.1 독립운동에 버금하는 광주학생운동이 봉기하자 이에 호응한 전국 194 학교 1만 4천 여의 학생이 노도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