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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 장석영 선생 사적비 경북 칠곡출신으로 1919년 4월 2일 성주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회당 장석영(1851.10.24 - 1926.6.8 1980년 독립장)선생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장석영선생은 1905년 을사5조약이 늑결되자 이승희, 곽중석등의 유림과 더불어 "청참오적소를 국왕께 올렸으며, 1907년 이래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지방의 보상회장으로 추대되어 비밀결사가 있을 때마다 대표직을 맡아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1912년에는 해외 독립운동기지와 이주개척지의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요좌기행을 저술하여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1919년에는 곽중석, 김창숙등과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기로 계획하고 청원문 초안을 담당하고 여기에 유림대표 137명중 1인으로 서명하였다. 1919년 4월 2일 성주장날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사건으로 체포되어 1919년 8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2년형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