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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 이가순을 기리며 – 양곡 陽谷 李可順 이가순 (1867~1943) 이가순 선생은 1867년 전주이씨 익양군파 12세손 종성과 어머니 해주오씨의 큰아들로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부터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한 선생은 1919년 원산감리교회 장로 시절 "조국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라"는 말로 동지들을 격려하며 3.1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원산에 대성학교와 신간회 지회를 세웠다. 일본의 군국주의정책이 날로 심해지자 민족의 경제적 자립운동에 남은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1934년 고양 능곡으로 왔다. 당시 이곳은 한강 물이 수시로 흘러넘치고 가뭄피해 또한 커서 버려진 땅과 같았다. 이를 가슴 아프게 여긴 선생은 의사였던 큰아들 원재의 도움으로 한강물을 끌어올리는 양수장을 세우고 수로를 만들어 이 지역 농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1943년 그토록 기다리던 해방을 앞두고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다. 해방 후 그의 영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아들 원재는 선생의 뜻을 이어 전 재산들 투자해 고양수리조합을 완성하였고 후일 이를 국가에 헌납하였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삶인가! 선생의 후손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 특히 둘째딸 원숙의 자녀 정명화·경화·명훈은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빛내고 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새 67년, 그 마음 깃든 들녘 물길은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선생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은 더욱 깊어지매, 여기 고양사람들이 그를 생각하는 마음을 빗돌에 새겨 오래도록 기리고자 한다. 허춘 짓고 노천 조갑녀 큰글씨 쓰다 양곡 이가순 숭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