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素貞 崔善嬅의 墓(소정 최선화의 묘) 최선화는 인천(仁川) 사람이다. 1931년 이화여전(梨花女專)을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36년 상해(上海)로 건너갔다. 최선화는 이곳에서 간호대학을 다니다 퇴학하고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여 1937년 5월에는 광주(廣州)에서 흥사단 제24회 창립기념식을 갖기도 하였다. 이 무렵 임시정부 재무차장이던 애국지사 양우조(楊宇朝)를 만나 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며, 뒤에 두 사람이 결혼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0년에 한국독립당이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임시정부를 적극 뒷바라지하였으며, 동년 6월 임시정부가 광서성 유주(廣西省柳州)에서 사천성 기강(四川省 江)으로 이전한 뒤에는 교포 부인들을 단합시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을 결성하는 주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3년 2월에는 다시 임시정부를 쫓아 중경(重慶)으로 옮겨 가, 기미년 3·1독립운동 직후에 조직되었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의 재건운동에 착수하여 조국과 민족의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한국애국부인회의 재건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최선화는 서무부장에 선출되었으며, 회장에는 김순애(金淳愛)가 추대되었다. 이들은 임시정부를 도와 각 방면에서 눈부신 활동을 벌였는데, 방송을 통하여 국내외 여성들에게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위문품을 거두어 항일전선에서 활동하는 군인들을 위문하는 한편 여성과 청소년들의 계몽과 교육에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정부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