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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겨레의 스승이요 지사이신 한 어른께서 고이 누워계시다. 경술국치 이래 세상이 여러 번 바뀌었으나 선생은 그 꼿꼿한 지조로 백년을 하루와 같이 겨레의 사표이셨다. 세상에 스승이 많으나 선생처럼 고결한 스승이 몇 분이나 되며 불의 부정과는 타협하지 않고 대쪽같이 곧은 기개로 한평생을 지내는 동안 만인의 숭앙을 받았던 어른은 또 몇 분이 되리오. 선생은 경기도 광주군 의곡면 포일리에서 태어나 18세부터 국어연구에 뜻을 두어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에는 회원들과 민족의 숙원이었던 한글 맞춤법을 완성하였고, 42년에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을 주모한 한 분으로 3년여의 혹독한 옥고를 치르시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어 국어학연구의 길에 선도자로서 등불을 비추셨으니 특히 그 문법론은 사학의 우뚝한 봉우리였고 남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어 대사전을 엮어 펴내는 한편, 시작과 수필로 뛰어난 문재를 드러내기도 하셨다. 한때는 동아일보 사장과 한국어 문교청연구회 회장을 맡아 언론창달과 어문교육시정에 공헌하였고, 현정회 이사직으로서 국조이신 단군의 존숭사업에도 앞장서셨다. 선생은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정재로 장학사업과 학회육성에 크게 이바지하셨고,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워 따르는 제자가 줄을 이었다. 구순에도 오히려 낭낭하시던 그 음성이 아직도 들려오는 듯한데 80년을 해로하시던 사모님과 함께 계시니 높은 풍교가 겨레로 더불어 길이 빛나리로다. 1992년 6월 9일 일석 선생 추모회 문하생 강신항 짓고 정양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