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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지사 윤병소 尹秉昭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당시 능곡리(지금의 능곡동)에 거주하고 있었던 윤병소(尹秉昭. 1887~1919) 지사는 1919년 3월 30일 당시 시흥군 수암면 비석 거리에서 전개되었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윤병소 지사는 29일 마을에 격문이 퍼진 것을 알고 시위에 참가하였는데, 2,000여 군중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경찰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을 돌며 시위 참가자들을 인솔하였으며, 해산 명령에 응하지 않고 면사무소 앞까지 나아갔다. 윤병소 지사는 1919년 4월 일제가 만세시위 주동자들을 검거할 때 체포되었으며, 수암면 만세를 주도했던 윤동욱 지사 등 총 6명과 함께 같은 해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징역 10개월에 처해졌다. 윤병소 지사의 신문조서에는 '나는 조선 독립을 열망하는 자로서 그 독립을 획득하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는 취지의 기록이 있는데, 함께 재판을 받았던 산현리의 윤동욱 지사 등이 항소한 것에 비해 1심 이후의 판결 기록이 없는 점, 국가보훈부 소장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 1919년 12월에 옥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수형 중 고문을 받아 순국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윤병소 지사에게 1968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