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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지사 권희 權憘 장현리 지금의 장현동 두일마을 출신의 권희(權憘, 1900~1955) 지사는 장곡리 출신 장수산(張壽山) 지사 등과 1919년 4월 7일 당시 시흥군 군자면 옛 시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결행하고자 하였다. 서당 생도였던 권희 지사는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이래로 받은 10년간의 학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 한다. 우리들은 이 기쁨에 대하여 오는 7일 군자면 옛 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같이 부르려고 한다. 각 리민(里民)은 구한국 국기 1개씩을 가지고 와서 모이라"는 내용의 「비밀통고(秘密通告)」를 직접 작성하여 돌려보게 하였다. 이 격문은 장현리, 장곡리와 월곶리까지 전달되었으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만세운동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당시 20세의 청년으로서 계획을 주도했던 권희 지사는 일제에 체포되어 1919년 9월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소 이후에도 고문의 후유증과 감시로 고초를 겪었다. 이후 1932년 소작인회 38명을 대표하여 장현리와 능곡리 일원에 토지를 소유한 지주(地主) 낭정호(浪定鎬)의 덕행을 기리는 송덕비(頌德碑) 건립을 주도하는 등 소작농민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1955년,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권희 지사에게 정부는 1986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