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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에 있다고 하시는 분은 이름이 비슷한 분이었다. 다시 이장님과 통화를 하였지만 이정렬 선생의 묘 위치는 알 수가 없었다. 다음에 더 조사를 해서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해방 후 이시영(李始榮)이 부통령이 되자 선생을 수소문하여 벼슬에 나오도록 권고하였으나 선생은 자손들에게 그의 재산을 어떻게 소비했는지의 사실을 밝혀주는 "인증서" 한통만을 받아들고 돌아왔다. 인증서(認證書) 본적 : 서울특별시 종로구 봉익동 146번지. 주소 : 대전시 은행동 3번지 이 정 열(李定烈) 단기 4233년 6월 24일생 위인은 거금 28년 전 대한독립을 위하여 전 가산을 경도(傾倒)하여 상해임시정부와 서간도 군사훈련 등 경비를 조달하며, 천진, 북경, 상해에서 활약하다가 동지와의 회합, 연락 또는 은닉할 장소의 불편 을 느끼고 이북 구성, 삭주, 자성, 벽동 등지에서 표면으로는 광산을 경영하면서 내면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코자 해방직전까지 광산을 계속 경영하며 활동한 애국동지임을 인증함. 단기 4285년 월 일 이시영, 김병노, 신익희, 이갑성 이와 같이 막중한 재산을 모두 털어 독립기금으로 바치고 "인증서" 한통을 유산으로 남긴 이정열 지사는 1963년 3월 1일 대통령 권한대행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박정희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참고 : 동아일보 1962.10.12자, 독립유공자공훈록 이정렬 선생의 묘는 대전현충원에 이장된 것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