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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리 순국선열 6일. 아버지 김충식은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를 지냈다. 그의 아들 김흥렬은 일찍이 동학에 입도하여 수촌리에 사는 백낙열과 함께 포교 활동을 하였다. 자신의 집 사랑방에 전교실을 만들어 천도교 교리를 전파하였으며, 지역의 선각자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관하여 많은 논의와 계획을 세웠다.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횃불시위와 3월 31일 향남면 발안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시위로 김성열, 김세열, 김흥복, 김주남이 발안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돌아왔다. 4월 15일, 화성지역 만세운동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제암.고주리로 들어 온 일본군 제79연대 소속 마리타 중위에 의해 그의 일가족 6명이 무참히 학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