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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순국기념탑 기미년 삼월일일 일본의 말굽아레 십년 잠들었던 민족의 분노는 활화산 터지듯 일어나 삼일독립운동이 선언되자 노도같은 백의 민족의 자유를 부루짖는 백수항전의 드높은 함성은 삼천리 방방곡곡에 만길 불꽃을 올렸다. 죽음이 아니면 자유를 다라 서리같은 총칼을 든 일본헌병앞에 대한독립만세를 높이 불렀다. 이리같은 일본헌병은 칼과 총으로 백의민족을 난도질쳤다. 경기도 화성은 역사깊은 문화의 도시였다. 여기에 향남면 제암리 드렁바위 농가 사십호는 가난했으나 정신문명의 수준이 높았다. 동리안에는 기독교 예배당이 있고 뜻있는 청년들은 예배당안에서 나라찾을것을 항상 기도드렸다. 삼일운동이 터지자 그들은 봉화를 높이 들고 독립운동을 일으킬 만반의 태세를 취했다. 독수리같은 일경은 이들의 행동을 노렸다. 마침내 음력 삼월 십육일 오후 일시경 일경들은 돌연 부락을 습격하여 청년 27명과 여인 2명 도합 29민을 무기로 위협하여 예배당에 감검하고 출입문을 폐쇄한 위에 석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불길은 드렁바위를 사를듯 하늘에 뻐쳤고 순국열사의 기막힌 통곡성은 아득히 구천으로 사라지는채 예배당은 한줌의 재로 화해버렸다. 만고에 없는 일경의 잔인무도한 행동이었다. 29분의 순국열사는 이렇게 푸른 피를 불속에 뿌려 겨레의 넋을 지켰다. 오늘 자주독립의 국가를 찾은 드렁바위사람들은 순국열사의 명복을빌면서 후세에 영원히 이 사실을 전하여하여 당시 피화처였던 예배당터에 정성을 모아 아담한 기념탑을 세운다. 전면은 대통령 리승만박시 쓰시다. 월탄 박종화 짓고 여초 김응현 쓰다. 추기 이곳에는 향남면 삼일운동 순국기념탑 건립위원회에서 1959년 4월 22일에 건립한 기념비가 있었으나 비신이 작고 모양이 초라하여 선열을 현양하기에 부족하므로 제암리 삼일운동유적지 정화사업을 수행하면서 원래 기념비가 있던 자리에 다시 규모를 크게하여 이비를 세운다. 1983년 4월 15일 경기도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