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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삼일독립운동은 한민족의 정당성을 주장한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운동이다. 주권과 자유인권을 회복하려는 성스러운 피로 이 땅에 물들인 일대 민족봉기이다. 화산처럼 터지던 독립만세! 도시에서 농촌에서 산에서 들에서 남녀노소 온 민족은 온통 조상의 얼을 이어받아 총궐기했다.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민족의 불길은 서신에도 거세게 불었다. 당시 상안리에서 거주하시던 이원행씨가 주동이 되어 일제에 항거한 서신면민은 노도와 같이 들고 일어섰다. 삼월 이십육일부터 주민이 합세한 이 운동은 삼월 이십팔일 새벽 군고개를 단숨에 넘어 송산면민과 합세 마침내 사강장날이라 수많은 군중이 이에 호응 거센 독립만세소리는 천지를 진동케했다. 주로 민중의 선두에 나셨던 이원행씨와 전곡리 홍성휴씨 그리고 이재항씨와 송교리 홍대규씨는 더욱 울분에 쌓인 일제 만행에 소리쳐 항거했다. 그후 일제 왜경과 헌병은 마을 습격 불을 지르며 전곡리 홍대우 지사를 학살하는 등 선생님의 집에 방화 전소시켰으며 가진 만행을 자행했다. 이원행씨는 그후 해외로 망명 블라디보스톡 하얼삔 상하이 등지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독립운동으로 이국 타향에서 가진 고초 끝에 수 년 후 귀국하여 향리에 돌아오신 뒤 국권회복은 오직 젊은 청소년에게 애국정신의 고취와 민족교육에 있음을 느끼시고서 서신학술강습소에서 후배 육성을 위한 몽학에 전념하시다 조국 광복의 새날을 못 보신 채 오십삼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올해 기미년 육십돐을 맞이하여 우리들 면민은 서신면에 불타올랐던 당시의 고귀한 지사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애국충정의 그 높으신 뜻을 길이 뒷날에 전하고자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 이종수 글 노경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