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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공훈사 선생의 자는 순서, 호는 원명, 초명은 병탁, 명준이며 본관은 곡산이다. 1894년 11월 22일 도안면 석곡리 555번지에서 부친 연채우와 모친 전주이씨 사이에서 4형제중 둘째로 태어났다. 청안 중명학원과 중국 연길 창동학원, 북경대학을 졸업했다. 경술국치에 발분하여 1919년 25세에 중국으로 망명 대한광복단에 가입하고 길림군정분서서기장 참모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4월 임시정부에 정보제공과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해 송세호와 국내로 잠입하여 이병철 등과 비밀항일운동단체인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하고 국치기념경고문 배포와 외교시보를 발행하여 독립의지를 고취했다. 대한애국부인회와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다시 상해로 탈출, 1921년 4월 재외 한인들의 대동단결을 위해 조소앙과 함께 세계한인동맹회를 설립했으며, 1922년에 들어 독립운동단체들의 분규가 심해지자 안창호등과 시사책진회를 조직하여 단합을 공고히 하고 1925년 5월 임시의정원에서 이승만 탄핵안이 가결되자 부당함을 성토하는 교정서를 발표했다. 1929년 12월 안창호, 김구 등과 함께 중국국민당과 연계하여 한국구민당을 조직, 1931년 12월 신익희들과 한국혁명당을 조직 중앙집행위원겸 선전부장으로 '우리의 길', '독립공론'을 발행하여 독립사상 고취와 독립단체단결을 공고히 했다. 1932년 11월 중국 내의 독립운동단체인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한국혁명당, 의열단, 한국광복동지회 등을 연합하여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 신한독립당 정무위원회 주임으로 독립세력을 강화했다. 1934년 임시의정원 충청도의원이 되어 민족정신 함양을 위한 독립공론을 발행하므로 일제 앞잡이인 상해 거류 조선인의 고발로 1937년 1월 7일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6년형을 선고받아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4년 10월 출옥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후 한독당 중앙집행위원, 훈련부장, 반탁국민총동원위원회와 비상국민회의 정무위원으로 김구선생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창했다. 선생은 항상 검정 두루마기에 검정고무신을 신었고 왕소금으로 치아를 닦았다. 선생은 권력에 아부하거나 권모술수에 흔들리지 않는 과묵하고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일생을 오직 애국일념으로 살다가 1963년 1둴 26일 새벽 2시 도안면 석곡리 생가에서 운명했다. 영결식은 2월 3일 도안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렸으며 수천장의 만장이 나부끼는 가운데 국무총리 이범석 장군의 조사와 수많은 도민들의 애도 속에 엄숙히 치렀고 유해는 석곡리 유해는 석곡리 선영에 안장됐다가 1976년 10월 26일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으로 이장했다. 정부는 지사의 애국정신을 기리기위해 1963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와같이 선생의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남긴 위대한 업적은 맏형 병환 선생의 투철한 애국정신의 가르침과 후원에서 이루어졌다. 병환 선생은 일찍이 영국 유학을 마치고 1909년 중국 길림성 용정에서 세관원으로 근무하던 중 1910년 일제가 나라를 빼앗자 의분강개하여 병호, 병주, 병오 3형제를 중국으로 망명시켜 독립운동에 참여시켰다. 한편 선생은 독립군의 군자금 지원과 무기 조달 지원, 비밀연락망 조직, 독립운동가에 대한 후원 등을 하는 이유로 1919년 간도 일본 총영사관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상해로 탈출하여 대한인거류민단원으로 상해임시정부와 중국국민회의, 북간도, 러시아 등과 대내외 독립정보 활동을 하다가 1926년 5월 14일 중국 진강현에서 족구의 광복만을 기원하면서 이역에 잠들었다. 묘지는 상해의 정안사 영국인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으나 중국문화혁명 때 손실되고 늦게서야 선생의 독립운동사실이 밝혀져 2008년 3월 1일 대통령표장이 추서되었다. 선생이 일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독립과 구국에 대한 일념은 오늘날 우리가 본받고 되새겨야하는 애국의 지침이며 길이길이 후손에게 남기고자 이 글을 쓰다. 2009년 12월 일 애국지사 연병호 선생 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