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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식 선생은 3 ·1운동 당시 대봉화 횃불시위를 주동, 공주감옥에 3년간 투옥됐다가 풀려난후 온가족이 중국 지린성으로 망명했다. 만주에서 아들 용구와 손자 남식, 남홍, 남기를 두고 생활하던 조동식 선생은 8·15해방과 함께 큰 손주인 남식을 데리고 고향으로 귀국했다. 중국에 남아있던 손자 조남기는 중국공산당 동북민주련군의 부사령관인 주보중중장을 만났고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에서 장교로 공부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후 1950년 그는 중국인민지원군 사령부 작전처 참모로 조선에 파견되여 조선과 중국 고위관계자 통역을 하거나 사령부가 발령하는 작전명령서를 일선부대에 직접 하달하는 일을 맡았다. 그후 '조남기는 자신의 동생이 현재 한국에 살고있는것을 숨기는 등 그동안 한국의 간첩으로 일했다'고 했다는 이유로 정파싸움에 많은 우여곡절을 격었다. 1988년 4월 조남기장군은 중공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됐으며 9월14일 중국인민해방군 상장으로 승진됐는데 당시 17명 고급장령중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이였다. 또 반대로 조동식선생은 중국 공산당원을 후손으로 두었다는 비난 여론으로 인해 선생의 공적도 폄하되 왔었다. 출처 : 인터넷흑룡강신문 , 충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