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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孫秉熙, 1861~1922)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북이면 금암리 출신이다. 도호는 의암(義庵)이고 초명은 응구(應九)이며, 이명으로 이상헌(李祥憲)을 사용하였다. 1882년 동학에 입교하였고, 1897년 최시형의 뒤를 이어 제3대 교주가 되었다. 1905년 12월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이듬해 1월 일본에서 귀국. 이용구 등 교단 내 친일파를 제거하고 교세의 확장에 노력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계획하고 추진하였으며, 민족대표 33인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고 독립선언식을 주도하였다. 옥중과 법정에서도 일제에 맞서 당당하게 투쟁하였으며, 병보석으로 출옥하였으나 곧 순국하였다(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