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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초등학교 독립운동기념비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보전해 온 우리 한민족은 1910년 일제의 침략을 당하여 주권을 상실하고 노예처럼 혹독한 핍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한민족은 불굴의 자주독립 의지로 항일투쟁을 지속하여 마침내 1919년 3.1운동이라는 최대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3.1운동에는 내수초등학교(보통학교) 학생들도 분연히 동참하였다. 1919년 4월 2일 정오경 교사와 85명의 학생들은 한말 의병장 출신인 한봉수 선생의 지휘에 따라 세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만세운동은 의병장 출신과 나이 어린 학생들이 함께 이루어 낸 독립운동으로서 3.1운동이 거족적이고 비폭력 자주 독립운동이라는 사실을 실증하는 사례이다. 투철한 독립정신을 배양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한 내수초등학교 출신들의 독립운동은 각지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1930년 1월 21일 광주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전개된 청주 학새들의 연합시위는 청주고보에 진학한 이인찬 등 졸업생들이 주고한 것이었다. 한편 1931년 6월 14일 내수초등학교 교정에 독립만세라고 쓴 격문이 부착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일제는 이를 구실로 평소 요주의 인물로 감시하던 5학년 담임 홍봉희 선생을 사직하도록 강요하였다. 동맹휴학은 일제하 학생독립운동의 전형적 양상으로 일제의 민족차별과 식민지 교육에 항거하여 결행한 독립운동의 방법이었다. 그간 역사 속에 묻혀있던 자랑스러운 내수초등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숭고한 독립운동의 위업을 후손에게 알리고, 이같은 내수인들의 고귀한 민족혼을 내수의 정신으로 소종하게 계승 발전시키자는 약속의 징표로서 이 비를 세운다.